목회칼럼
QT-John 8.26-30
“내가 너희에게 대하여 말하고 판단할 것이 많으나 나를 보내신 이가 참되시매 내가 그에게 들은 그것을 세상에 말하노라 하시되 그들은 아버지를 가리켜 말씀하신 줄을 깨닫지 못하더라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인자를 든 후에 내가 그인 줄을 알고 또 내가 스스로 아무 것도 하지 아니하고 오직 아버지께서 가르치신 대로 이런 것을 말하는 줄도 알리라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나는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 이 말씀을 하시매 많은 사람이 믿더라” (요한복음 8장26-30절)
이런 글을 인터넷에서 읽어 보았습니다.
외로움은 인간의 원초적인 문제입니다.
외로움을 잊고 싶어서 일에 몰두하고,
외로움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사랑을 합니다.
인간이 계속 죄를 짓고 방황하는 것도
외로움을 잊어 보고자 하는 몸부림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은 외로운 존재입니다. 누구랑 함께 있어도 외롭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인생은 만남과 헤어짐의 엮겨짐입니다. 그 엮김 속에서 우리는 배신감, 고독, 허전함, 상실감, 그리고 외로움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창조부터 인간이 홀로 있는 것이 안 되어 보여 짝을 만들어주셨는데,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므로, 아담과 하와 사이에 불화가 생겼으며 그들 가운데는 단절이라는 것이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같이는 있으나, 뭔가 모르게 우리 안에는 고독함과 쓸씀함, 불만족과 불충족, 그리고 외로움이 늘 자리를 잡고 있는 것입니다. 외로움은 모든 사람에게 찾아오는 공통된 마음의 상태가 아닌가 싶습니다. 외로움은 누구에게나 다 있다는 것입니다. 다만 빈도와 크기의 차이뿐입니다. 문제는 우리 안에 있는 외로움을 “어떻게 처리하는가”입니다.
어떤 사람은 스스로 분주하게 바삐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일이나, 취미, 성취, 성공 등, 무언가에 몰두 집중하여 외로움에서 도피하려고 합니다. 또한 어떤 사람은 마약, 술, 도박, 섹스, 인터넷, 자기도 모르게, 하지말아야 할 것을 하며, 가지말아야 할 곳을 찾아 가기도 합니다. 또한 어떤 사람은 지나친 사람 만남과 의존을 찾아 헤매기도 합니다. 이런 모든 것들이 참 해결책이 아니므로, 여전히 존재하는 외로움을 해결하기 위해, 일시적인 만족과 잠시적인 망각으로 인해, 같은 방법을 추구하고, 또한 아니면 새 방법을 궁리하며 찾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어느 것도 우리에게 완전 해결책을 주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고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절대 만족과 완전한 충만은 오직 예수입니다. 이것은 역설이 아닙니다. 이것은 많고 많은 사람들의 경험담입니다. 이것을 깨닫고 바라는 사람은 꼭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세상의 것들이 우리에게 육체적, 정서적 만족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이것이 다 인것처럼 살아가는 것입니다. 참된 진리 빠진, 아쉬운 인생을 살아가는 인생을 볼 때, 너무나 안타갑고 아쉽기 한이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수직적 관계와 세상과의 수평적 관계를 잘 함유한 균형잡힌 삶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을 무작정 버리고, 등지라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은 정복의 대상입니다. (이말도 성서적으로, 신학적으로 잘 이해하셔야 합니다.)
요한복음 7장38절에,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참 만족이란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 흘러 밖으로 나오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참된 인생의 만족은 전 인격적 변화에 있습니다. 참된 성취는 분량에 있지 않습니다. 질에 있습니다. 물건 하나를 만들어도 잘 만드는 것이 중요하지 많은 것을 만드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한 사람을 변화하여도 참된 인간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지, 껍질만 변한 인간 100이 더 나은 것이 아니라 속 알맹이가 변하는 것이 더 귀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참제자를 말씀하셨습니다 (8장31절). 이세상에는 제자는 많으나, 참제자는 적습니다. 학교에도 학생들은 많으나, 참학생은 많지 않습니다. 공부가 무엇인지, 공부를 왜 해야하는지 모르고 공부를 하는 학생들… 인생과 공부의 관계가 무엇인지, 분리된 학교생활을 하는 학생들이 많은 것처럼, 신앙도 그렇습니다.
제자란, 배우는 학생을 말합니다. 학생은 끊임없이 배우고 성장해야 합니다. 그런데 참제자는, 말씀 속에서 말씀의 본 뜻과 깊은 뜻은 알아가는 자들입니다. 단순히 말씀을 인생의 나침판으로, 성공의 비밀로, 번영과 번성의 목적으로 신앙을 갖고, 유지하며 성장시키는 것이 아니라, 말씀 속으로 들어가, 말씀 속에 거하는 자들입니다. 말씀에 거하면 거할 수록, 말씀에 붙잡히면 붙잡힐 수록, 말씀 대로 행하고 살면 살 수록, “너희가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말씀하신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이 주시는 참 자유(요한복음 8장36절)를 경험하게됩니다. 세상의 것은 알면 알수록 오히려 속박과 억압을 줍니다. 그런데 주님은 참자유를 주시는데, 먼저 죄와 사망에서 자유, 또한 질병, 두려움, 걱정, 근심, 시기, 질투, 열등감, 가난, 고난, 고독, 외로움에서 자유를 주시는데, 인생의 모든 속박과 억압에서 자유를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이 참자유는 외적인 면에 중점을 두지 않고, 내적인 면에 초점을 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육적으로 법적으로 자유하나, 심적으로, 정서적으로 종살이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전인격적인 참자유는 전인격적인 변화를 동반하는데, 예수 빠진 참자유, 참변화, 참만족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어떠하셨을까요? 외로우셨을까요? 육신으로 오신 예수님도 외로왔을 것입니다. 그분도 우리 같이 같은 감정, 육신을 입은 모든 인간에게 공통으로 찾아오는 근본적 문제를 갖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그분의 혜결책은 무엇이었을까요?
지난 주일 (2월7일) 생명의 삶 (요한복음8장21-30절)을 읽으면서, 눈에 새롭게 끌렸던 구절은 바로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 (8장29절)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삼위일체의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성부 하나님과 늘 함께하셨습니다. 성부 성자 성신의 신적 공동체에서 완전한 교통과 교제로 외로움과 허전함, 고독과 쓸씀함 없이 참만족과 참충족을 지내셨습니다. 그런데 육신의 몸을 입으신 후, 공간과 시간의 제한 속에서 하나님께 나아가야 했습니다. 신적의식을 갖고, 코람데오, 늘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셨던 것입니다.
세상에서 참으로 행복한 사람은 “나와 함께 하시다…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다”라고 고백할 수 있는 사람, 이 확신 속에서 사는 사람, 이 고백과 이 확신의 의미와 뜻을 누리고 사는 사람입니다.
우리 주님은 만족을 위한 만족, 충족을 위한 충족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소명과 사명감당, 그리고 사명성취를 위한 만족과 충족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나를 보내신 이가…” 자기가 이 세상에 왜 왔으면, 왜 존재하고 있는지, 자기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알고 살 때, 우리의 만족과 충족은 참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읽는 가운데, 우리 예수님에게서 몇가지 발견 한 것이 있었습니다.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 우리 예수님은 들은대로 사셨습니다. “나를 보내신 이가 참되시매 내가 그에게 들은 그것을 세상에게 말하노라” (8장26절). 인생은 들은대로 사는 것입니다. 무엇을 듣고 사십니까? 누구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십니까? 듣는대로, 들은대로 살아가는 인생…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2) 두번째로, 우리 주님은 가르쳐주신대로 사셨습니다. “내가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아니하고 오직 아버지께서 가르치신대로 이런 것을 말하는 줄도 알리라” (8장 28절). 인생은 또한 가르쳐준대로, 배운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겸손히, 인내하며, 주님의 가르침을 받는 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 또한, 우리 주님은 하나님이 원하시는대로 사셨습니다.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내가 항상 그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 (8장 29절). 그분은 자기 마음대로 사시지 않으셨습니다. 자기 영광을 위해 사시지 않으셨습니다. 자기를 영화롭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 아버지였기에, 자기 영광은 구치 아니하셨습니다 (8장 50절). 그분은 하나님 뜻대로, 하나님이 원하시는대로 사셨습니다. 누구 마음대로 살고 있습니까? 누구 뜻대로 인생을 꾸려가고 있습니까? “주님, 주님이 원하시는대로 순종하며 살겠나이다”라고 고백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임재(같이 하심)는 빈 공간에 접촉점 없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서 접촉점을 찾으시는데, 바로 그것은 믿음이며, 간절함이며, 열정이며, 겸손이며, 소망입니다. 믿음, 열심, 간절함, 열정, 겸손, 천국소망을 갖은 심령은 은혜가 임하는 장소입니다. 하나님이 찾아오셨다가 떠나고 싶지 아니하는 귀한 장소입니다.
이 거룩한 마음이 여러분의 마음이 되시기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말씀에 치유를 받습니다.
기도에 평안을 얻으며 허전한 마음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웁니다.
오늘도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