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아쉬움
지난 주일 예배는 너무나 감동이 큰 예배였습니다.
주희의 간증은 너무나 감동적이었습니다. 자기를 변화시켜주신
하나님의 역사는 우리의 가슴을 부풀어 오르게 했습니다. 악몽같이 어려웠던 지난 일년, 하나님의 터치로 해방받은 극적인 이야기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다시금 깊게 느끼게 했으며, 우리 마음에 새 소망과 새 믿음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주희는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했던 성령의 나타나심을
통하여 몸이 떨리고, 남은 넘어져도 자기는 절대로 넘어지지 않을 것 같았는데, 하나님의 파우어에 밀려 하나님의 사랑의 터치를 경험하고, 새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또한 모니카의 찬양과 나눔도 우리의 영혼을 흔들어 주었습니다. 성령님을 잘 모르던 모니카가 가슴이 채워지듯 하나님의 임재와 사랑을 느끼는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싶어 지난 한달동안 자기 최선의 열심을 내더니, 하나님을 깊게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모니카는 성악가도 아니고, 노래를 그리 불러 본 적도 없다는데, 그의 찬양소리는
영혼이 부르는 찬양, 마음을 다하여 부르는 소리였습니다.
그런데 더 좋았던 것은 하나님께 드렸던 경배와 찬양의 시간이었습니다. 김유진 목사님께서
선택하신 찬양은 “이것은 나의 간증이요”와 “거룩, 거룩, 거룩”이었습니다. 백 여명이 참여한 성전 안이 마치 가득히 찬 기분을 갖도록 찬양의 충만을 느끼는 시간이었습니다. 마음을 다하여 힘을 다하여 정성을 다하여 영혼을 다하여 드리는 찬양이었습니다.
예수로 나의 구주 삼고 성령과 피로 써서 듭나니
이 세상에서 내영혼이 하늘의 영광 누리로다
이것이 나의 간증이요 이것이 나의 찬송일세
나 사는 동안 끊임없이 구주를 찬송하리로다
온전히 주께 맡긴 내 영 사랑의 음성을 듣는 중에
천사들 왕래 하는 것과 하늘에 영광 보리로다
이것이 나의 간증이요 이것이 나의 찬송일세
나 사는 동안 끊임없이 구주를 찬송하리로다
주안에 기쁨 누리므로 마음의 풍랑이 잔잔하니
세상과 나는 간곳 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도다
이것이 나의 간증이요 이것이 나의 찬송일세
나 사는 동안 끊임없이 구주를 찬송하리로다
성령과 피로 거듭난 영혼들, 주님께 모든 것 내려놓은 자들, 하루종일 주님 찬양만 해도 아깝지 않다고 생각하는 성도들이, 하늘의 영광을 맛보아 알기에, 영적 청각으로 주님의 음성을 듣기에,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의 소리, 아름다운 소리였습니다. 참으로 하늘을 진동하는 찬양이었습니다.
특히 “거룩 거룩 거룩”을 부를 때는, 성전 안에 수 백명이 넘는 성도들이 찬양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정확히 언제부터였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찬양 도중, 어떤 여성의 목소리 같았는데, 너무나 아름다운 소리가 뒤로부터 들리는 것이었습니다. 지금까지 들어보지 못했던 소리었습니다. 문듯 다가오는 느낌은 “혹시 천사의 소리는 아닌가”라는 기분이었습니다. 얼마 전에도 존 초이와 진형, 그리고 저스틴이 한 교실에서 찬양을 하고 있었을 때, 세 명의 목소리가 아닌, 여성의 목소리 같으면서도 어떻게 표현을 해야할지 모르는 다른 한 사람의 아름다운 찬양 소리가 들렸다는 것입니다. 들어오는 문쪽에서 들려오는 찬양 소리었는데, 다른 누군가 부르는 소리였다는 것이었습니다.
지금까지 경배와 찬양 시간에, 성전이 가득 차오르는 듯한 느낌은 한 두번이 아니었습니다. 성전 안에, 50명이 있든, 100명이 있든, 아무리 빈자리가 많더라도, 마치 성전이 가득 찬 것처럼, 찬양이 가득 찬 기분은 너무나 많았습니다. 한 번은 열 몇명으로 구성된 찬양대가 찬양을 부르는데, 마치 몇 백명이 부르듯, 성전이 가득찬 것처럼 느껴졌던 적이있었습니다. 50명도 안되는 숫자의 소수가 부르는 찬양시간이 몇 백명이 부르는 것같이 찬양이 성전을 가득히 채워 빈 공간이 하나도
없는듯 느껴진 적도 있었습니다.
찬양 가운데 계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는 찬양 속에, 천사의 방문이었을까요?
성경을 보면, 천사에 대하여 250번 이상 언급되어있습니다. 예수님도 천사들을 여러번 언급하셨습니다(복음서에 41번). 성경에서 천사들의 역활과 활동은 여러분야로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먼저 천사들의 활동은 한 마디로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는데 있습니다. 시편 103편 20-21절에서 그들의 활동 내용을 잘 볼 수가 있습니다. 그들은 1) 여호와의 말씀을 이루고 2) 여호와를 송축하며, 3) 여호와의 뜻을 행한다고 했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첫째, 천사들은 “부리는 영으로서 구원얻을 후사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 (히브리서 1장 4절)을 받은 존재들입니다. 그래서 천사들은 죄인들이 회개하고 돌아올 때 기뻐하고 즐거워한다고 했습니다(누가복음 15장 10절).
둘째, 천사들은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천사)들을 명하사 네 모든 길에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히브리서 1장 4절)고 기록한 것처럼, 우리를 보호해주도록 분부를 받은 존재들입니다. 어떤 중국 선교사님은 말씀 전하다가 채포령이 내려져서 공인들에게 포위되었었는데, 천사들이 공안들의 눈을 가려 보지
못하게 함으로 포위망을 뚫고 무사히 빠져 나올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셋째, 천사들은 능력이 있어 여호와의 말씀을 이루며 그 말씀의 소리를 듣고 주의 백성을 위해 돕고 싸우는 존재들입니다(시편 103편 20절). 그들은 참으로 능력이 뛰어나,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이사야 37장 36절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천사 하나가 하루 저녁에 앗수르 군대 18만5천을 죽일 수가 있었습니다.
넷째, 또한 천사들은 항상 하나님의 얼굴을 뵐 수 있어서(마태복음 18장 10절, “삼가 이 소자 중에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저희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우리를 구체적으로 돕고 시종드는 존재들입니다.
천사의 활동은, 첫째로, 성도 각 사람에게 나타납니다. 예를 들어, 다니엘을 사자 굴에서 사자들의 입을 봉하셔서 그를 상해치 못하게 하셨습니다(다니엘 6장 22절). 엘리야의 경우도 가뭄과 굶주림 속에서 찬사를 통하여 음식을 준비해주시고 그를 위로해 주셨습니다(열왕기상 19장5절, 로뎀나무 아래 누어 자더니 천사가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 또한 베드로의 경우도, 그가 감옥에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를 두 번이나 그를 석방시켜주셨습니다(사도행전 5장19절; 12장8-11절). 천사들은 또한 전도와 기도할 때 돕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빌립에게는 천사가 나타나서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가서 그를 지도해라고 지시해주었습니다 (사도행전 8장 26절).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앞에 두고 감람산에서 기도하실 때, 천사가 주님을 도와주었습니다(누가복음 22장43절, “사자가 하늘로 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돕더라”).
두번째로, 천사들은 교회와 교회의 활동에 관여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요한계시록 2-3장에서 일곱 교회에 천사를 보내셔서 각 교회에 필요한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귀있는 자들은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라고 하셨습니다. 천사를 사용하셔서 말씀하시기도 합니다.
그런데 저에게 흥미로운 것은 이사야의 경험입니다. 이사야 6장 1-7절을 보면, 하늘 보좌에서부터 성전에 내려온 천사를 볼 수 있습니다. “웃시야왕이 죽던 해에 내가 또 보았는데, 주께서 높게 들린 보좌에 앉으시고, 그의 옷자락은 성전을 가득 채웠더라. 그 위에는 스랍들이 서 있어 각기 여섯 날개를 가졌는데 그 둘로는 그의 얼굴을 가리고 또 둘로는 발을 가리며 둘로는 날았더라. 그리고 서로 소리쳐 말하기를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만군의 주여, 온 땅이 그의 영광으로 충만하도다 하였더라. 이같이 창화하는 자의 소리로 인하여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집에 연기가 충만한지라. 그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를 뵈었음이로다. 때에 그 스랍의 하나가 화저로 단에서 취한 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레로 날아와서 그것을 내 입에 대며 가로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재하여졌고 네 죄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