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이 글은 생명의 삶을 갖고 신명기
33장을 묵상하다가, 묵상이
설교가 되었습니다. 이 설교는 지난 금요일에 전했던 말씀입니다. 여러분
다, “좋으신 하나님”이라는
복음송을 다하실 것입니다. 옛날에
수백번도 더 불렀던 복음송이죠. 눈물 콧물을 흘리면, 예배 때,
무진장 불렀을 것입니다. “좋으신
하나님, 좋으신 하나님, 참 좋으신 하나님 나의 하나님...
“ 우리의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다라는 것입니다. 나의 하나님... 나에게
좋으신 하나님... 나를 좋게 해주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이죠. 또한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응답해
주시는 참 좋으신 하나님 나의 하나님...”
우리의 기도에 귀를 기울리시는 하나님... 건성으로 듣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작은 신음 소리까지 들으신다고 했습니다. 실망되어 한숨 쉴 때도,
마음이 상해, 신음할
때도, 입에 나오는 우리의 어떤 소리도 하나님은 듣고 있다는 것이죠... 또한 우리 하나님은
“한 없는 축복을 우리게 주시는 참 좋으신 하나님 나의 하나님...” 우리 한국교회에서는 별로 하지 않지만, 미국교회에서는 아주 잘하는 것인데, 누가 “God is good”하면,
“all the time”이라고 하죠. 하나님은 어떨 때만 좋은 것이 아니라, 항상 좋으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나의 경험이 이 사실과 상반된다 하더라도, 오늘 내가 몸으로 느끼는 느낌이 고통이고, 나의 삶에 나타나는 증거 아니 뵈어도...
믿음으로 나아가는 것이죠... 우리가
잘부르는 “이 눈에 아무 증거 아니 뵈어도” 찬송처럼... 이 눈에 아무 증거 아니 뵈어도
믿음만을 가지고서 늘 걸으며 이 귀에 아무 소리 아니 들려도 하나님의 약속위에 서리라 걸어가세 걸어가세 믿음 위에 서서 걸어가세 걸어가세 걸어가세 의심을 버리고 걸어가세 이 눈에 보기에는 어떠하든지 이미 얻은 증거대로 늘 믿으며 이 맘에 의심 없이 살아갈 때에 우리 소원 주안에서 이루리 나아가세 나아가세 믿음 위에 서서 나아가세 나아가세 나아가세 의심을 버리고 나아가세 여러분, 나아가고 계십니까? 하나님만 바라보고 나아가고 계십니까? 오늘 본문에서 모세는 이제 바로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축복싶었습니다. 40년의 광야교회에서 하나님을 섬기던 모세는 이제 드디어 요단강 건너 가나안 땅으로 들어갈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모압 땅에서 설교를 시작했습니다. 시내산에서 받은 율법을 다른 관점에서 보면서, 1장부터 30까지, 새로운 관점에서 본 말씀을 전해주었습니다. 앞으로 약속에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가르쳐주고 전한 것입니다. 또한 모세는 또한 자기 뒤를 이를 지도자를 세우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40년 동안 훈련시켜준 여호수아를 지도자로 세웠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한 노래를 지어 주었습니다. 하나님을 잊어 버리지 말라고 노래를 지어주었습니다. 그 노래가 32장에 기록되어 있는데, 그 내용은 간단한 내용이었습니다. 먼저 하나님은 교훈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늘 우리를 교훈해주신다는 것입니다, 가르칠 “교”... 훈계할 “훈”... 우리하나님은 가르치고 훈계하시고, 격려해주시고, 힘주셔서, 풍성한
삶을 살도록 도와주시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늘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훈은 비처럼 내리고 하나님의 말씀은 이슬처럼 맺히나니 연한 풀 위에 내리는 비 같고 채소 위의 단비 같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연한 풀 위에 내리는 비와 채소 위에 단비 같다... 우리는
연한 풀 같고,
수분 없이 자랄 수 없는 채소 같아서... 하늘에서 내리는 이슬과 비가 없다면 하루도 살아갈 수 없고 버틸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말씀이
없이는 단 하루도 온전히 설 수 없는 연약한 존재이기에 여호와의 말씀을 사모하고, 잊지 말 것이며,
말씀으로 충만하라는 것입니다. 이슬이
맺일 때까지, 비가 흠박내려 온 풀과 채소, 둘레를 젖시듯, 충만하라는 것입니다. 이슬이 맺이다 말고, 비가 오다 말고,
젖시다 말고, 채우다
말지 말고, 흠박 젖고, 가듯 채워주시겠다는 것이죠... 이것을
노래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노래하라는 것입니다. 임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를 눈동자같이 보호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황무지
같을 인생길에서, 광야같은 거친 인생길에서, 우리를
만나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호위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보호해주시고, 우리를 눈동자같이 지켜주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눈동자를 본다면, 하나님의 눈동자에는 우리가 비추어 보인다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늘 바로보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독수리처럼 훈련하시는 하나님이시다는 것입니다. 그냥 나두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손과 손가락을 훈련시키셔서, 전쟁과 싸움에 능하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능력만
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재능과 실력을 키워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축복하면서, 모세가
참으로 하고 싶은 말은 “하나님이 그들을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믿으십니까? 하나님이 여러분을 사랑하신다는 것... 로마서 5장5절에 사도바울도 같은 말씀을 하셨죠...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라고 했습니다.
우리 안에 주신 성령님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마음에 부어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듣고,
머리로 아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성령으로 느끼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지난 주일 성령강림주일에 성령님이 다시 찾아오셨습니다.
아멘? 뭘 느끼셨습니까? 어떤 분은 손이 무거웠다고 합니다. 어떤 분을 누어 일어나고 싶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강했다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 몸에 불이 임하는 것을 느꼈다고 합니다. 그냥 느낌입니까?
“그냥 느낌이 좋았다”입니까? 아니죠. 하나님의 사랑, 은혜를 경험했다는 것이죠. 하나님의 임재를 느낀 것입니다.
참으로 하나님이 같이 하시는구나...
어려움 속에, 역경속에 진짜로 같이 하시는구나 다시 느낀 것입니다.
여기 2절에서 모세는 하나님에 대해 간단한 진리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나님께서 그들을 사랑하시는지를 말씀해주시는 것입니다. 2절의 말씀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찾아오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강림하시지 않았냐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시내산에서 오셨고 세일산에서 일어나셨고 바란산에서 비취셨다고 합니다. 시내산은 하나님께서 강림하셔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씀을 주신 곳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도 이 시내산이 있지 않습니까? 인생 살아가면서, 하나님이 말씀하시지 않습니까? 주의 음성을 들려주시고, 일러주시지 않습니까? 우리에게도 인생길 가는데, 시내산
같은 곳이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여기서 세일산과 바란산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나갔던 여정길을 말합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구름기둥으로, 불기둥으로 임하셔서 인도해주셨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재미나는 표현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일만 성도 가운데 강림하셨다고 했는데, 아니 일만 성도라니...
출애굽기를 보면, 이스라엘백성이 애굽에서 나올 때,
장정만 60만이 넘었다고 했죠. 그러니까 아마 전체를 말한다면, 200만이 넘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 일만 성도 가운데서 강림하셨다고 했을까요? 전체 인구는 200만이 넘어도 성도는 일만명 밖에 안되기 때문에 그런 것일까요? 여기서
일만성도라는 말은 꼭 이스라엘 백성중에 잘 믿는 성도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왔던 수많은 천사들을 말한다고 하죠. 여기서
가운데라는 말보다, 아마 함께라는 말이 더 맞을 것입니다. 이말씀은 하나님께서 수많은 천사들과 함께 이스라엘 백성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이말씀은 하나님의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관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같은 보잘 것 없는 자를 찾아오시는데 천군천사를 동원해서 오셨다는 것은 나를 굉장히 귀하게 여기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천군천사와 함께 우리에게 임하사 우리를 호위해주시고, 감싸주시며 보호해주시고, 인도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찬양가운데 “복의 근원 강림하사”라는 찬송이 있습니다. “복의 근원 강림하사 찬송하게 하소서...” 영어로
보면, 복의 근원,
강림하소서. 나의 마음의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한량 없는 하나님의 자비하심 측량할 길 없어서 찬양하겠다는 것입니다. 천사들의 찬송가를 나를 가르치소서...
이말은 천사들이 하늘에서 불이 타오르는 열심, 성결한 입, 하나님만 찬양하고 싶은 열정으로 부르는 찬송이 있는데, 그 찬송을 가르쳐달라는 것입니다. 나도 천사들처럼 하나님을 찬송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구속하신 그 사랑을 항상 찬송합니다...
영어로는 “산을 찬송합니다.
나는 산에 고정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의 변화 없는 사랑의 산...” 여기서
산이란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인데, 그 사랑에 고정되어있고, 그 사랑을 찬송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참된 축복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에게 임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강림하심... 그의 임재...
그의 얼굴... 하나님
사랑 안에 가만히 거할 수 있는 차분함, 안전함... 하나님을 내 우편에 두고, 하나님이 내 앞에 계시기 때문에 요동치 아니하는 믿음... 흔들, 흔들 거리는 믿음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 있다하더라도, 하나님의 사랑에 고정되어, 요동하지 않은 믿음... 사도바울이 그랬잖아요.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 성령으로 충만해지면, 하나님 안에 거하면 거할 수록, 하나님의 영으로 채워지면 채워질 수록, 하나님 안으로 깊이 들어가면 들어갈 수록, 자유해지는 것입니다. 염려로부터, 두려움으로부터, 죄로부터 자유해지는 것입니다. 또한 여기서 재미나는 것은 하나님께서 임하셨는데, 손에 율법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오른손이라는 것은 능력을 가르키는 것인데, 능력의 손에 불같은 율법이 있다는 것입니다. 오른 손에 율법? 시내산뿐만 아니라, 세일산과 바란산에 임하실 때도 오른 손에 말씀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기 어떤 분이 서계십니다. 별로 힘이 없어보입니다. 머리는 금발입니다. 얼굴은 쇠약해 보입니다. 허리는 굽혀졌고, 지팡이를 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그의 오른 손에는 성경책이 쥐어져 있습니다. 성경책? 하나님의 말씀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은 백성을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멀리 떨어져 있는 세 개의 산, 시내산, 세일산, 바란산을 뒤덮을 광대한 모습으로 수많은 거룩한 무리를 대동하고 강림하셨는데... 그 손에 검이 있던 것이 아니라... 율법(아마 율법책)을 들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어딘지 모르게 좀 약해 보이지 않습니까? 적어도 왕의 홀이나 세상을 다스릴 칼이나 호랑이를 끌고 나와서 백성을 호령하는 위엄을 보이는 것이 더 어울렸을 것입니다. 사람은 생각하기에 성경책? 약해 보입니다. 책? 말씀이 다라고 하면서도... 말씀? 사람지혜, 부화, 권력이 더 낫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말씀에 불이 있다고 했습니다. 말씀은 단순한 글이 아닙니다. 말씀은 단순히 옛날 이야기가 아닙니다. 여러분, 믿으십니까? 말씀을 믿으십니까? 하나님은 말씀의 하나님,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모세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성도는 하나님의 수중에 있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철저한 보호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손이란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능력과 구워늘 베푸시는 손이기에 그 손 안에 있다는 것은 완전한 보호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49장16절에서는 자신의 손바닥에 새겼다고 했습니다. 가까이 있다는 것입니다. 늘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늘 기억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의 발 앞에서 주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된 복입니다. 복은 주님의 발 앞에, 수중에, 주의 말씀을 듣을 수 있는 마음과 귀가 있는 것입니다. 마리아가 예수님 발 아래에서 말씀을 듣었던 것처럼, 주님 앞에 있으면 있을 수록, 거하면 거할 수록, 애쓰지 않습니다. 그리 힘쓰지 않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아이가 여러분에게 와서 때쓰고, 애씁니까? 아닙니다. 여러분에게 거하면 되는 것입니다. 여기 4절에서 이스라엘 총회의 기업이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율법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말씀을 말합니다. 기업이라는 것은 최고로 중요한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업은 우리의 자녀일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의 기업을 우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의 기업은 하나님의 말씀, 곧 하나님인 것입니다. 우리의 최고 원하는 것을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으로 여기고 살자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음성 듣기를 무엇보다 더 귀하게 여기고 살자는 것입니다. “나의 영원하신 기업 생명보다 귀하다...” 하나님의 말씀이신 예수그리스도를 생명보다 귀하게 여길 때... 하늘이 임할 것입니다. 또한 5절에서 모세는 “여수룬”에 왕이 있다고 했습니다. 여수룬이란 옳은 자라는 말인데, 이스라엘의 별명입니다. 이스라엘이 옳은 자가 될 수 있는 길은 바로 하나님을 왕으로 모실 때만 옳은 자고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왕으로 모실 때, 하나님의 백성이 회중, 교회에 모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을 때, 하나님은 왕으로 임하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의 최고의 복은 말씀입니다. 모든 하나님의 축복은 하나님의 사랑에 근거합니다. 우리는 그 수중에 있습니다. 걱정마십시오. 조급하지 마십시오. 주님 안에 거하십시오. 모든 염려, 걱정, 두려움, 짜증, 답답함에서 자유를 꼭 주실 것입니다. 말씀으로, 성령님의 임하심으로, 우리는 앞으로 돌질 해 나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의 약속의 땅을 정복할 것입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