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작년 2009년 첫 주일에 드렸던 말씀입니다.
생각이 나서 다시 나눕니다.
본문: 누가복음 2장40-52절
제목: 신적 맨데이트
누구든지 새 것을 좋아합니다… 새옷, 새 청바지, 새 양복, 새 신발, 새 차… 새로운 것 다 좋아합니다. 저도 새 것을 좋아합니다. 많이는 사지 않치만, 새것을 사는 것을 좋아합니다.
하나님도 그러십니다. 말씀하시기를 “보라 내가 새일을 행하리니”하셨습니다. 머리에 딱 떠오르는 것은 우리 하나님은 새 노래를 좋아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보고 새 노래를 하라 하십니다. 사실 성경 전체에 깔려있는 것이 바로 새 것입니다: 새 포도주, 새 소망, 새 미래, 새 마음, 새 심령, 새 이름, 새 하늘과 새 땅, 새 예루살렘, 새 탄생 (거듭), 새 사람,새 속사람, 새 옷, 새 방법, 새 계명… 하나님은 참으로 새 것을 좋아하십니다.
저는 새해를 좋아합니다. 왜냐하면, 새로운 해는 새로운 약속, 새로운 기대, 새로운 소망, 새로운 꿈, 새로운 바람, 새로운 목표를 주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변화들, 새로운 방향, 새로운 기회들, 그리고 새로운 시작과 새로운 성장… 마음에 새로운 흥분이 찾아 옵니다.
여러분에게는 2008년이 어떻했는지 잘 모르겠지만, 여러분에게 좋은 해였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또 만나고 새로운 체험과 경험, 기쁨과 충만을 느끼 셨기를 바랍니다. 저에게는 그 동안 여러 해 동안, 기도하고 기도해왔던 제 마음의 소원들이 이루어지며 가슴이 뜨거워지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게 되었던 해였습니다. 개인면에서 나 나름대로성장한 좋은 해였기에 감사하고 감사할 뿐입니다. 그리고 또한 교회면에서도 성장한 해였습니다. 역시 성장은 좋은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니깐, 예수님이 이제 12 살이 되었습니다. 아기 예수가 자라서 아이 예수가 되고, 어린 아이가 소년인 된 것이었습니다. 2장 40절(동사들이 과거 진행형)을 보니깐, 어린 아이 예수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만하여지며, 더 많은 하나님의 은총이 그 위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52절(여기도 동사가 과거 진행형)에서도, 우리 예수님은 지혜와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많은 사랑과 은총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예수님도 끈임없는 성장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탄생은 역사적으로 아주 중요한 사건입니다. 이 그리스도의 능력과 영향력 때문에, 역사를 주전과 주후로 나누지 않습니까! 예수님의 탄생이 세계역사를 갈라놓는 시점이 된것이죠. 예수님은 바로 세계역사의 전환점이며, 옛 것과 새 것을 나누는 분리점이죠. 예수님 탄생 후, 우리는 우리 주님의 해에 살고 있는 것이죠.
예수님의 탄생은 어떤 하나의 다른 탄생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두 성품이, 곧 인성과 신성, 하나님과 사람의 주입/출입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으로서 모든 것을아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이 모르시는 것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모든 것을 아신다면, 어떻게 그의 지혜가 자란다는 것입니까? 예수님은 인간으로서 아직 어린아이입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 일입니까? 이게 바로 성육신의 신비, 신비로운 성육신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도 인간으로 자라야 했습니다.
성장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계획 속에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을 때, 모든 살아있는 생물 안에 우리가 말하는 “생명체적 잠재력”을 넣으셔서 자라고 번식하게 하셨습니다. 이것을 내재적 능력이라고 합니다. 살아 있는 모든 것 안에는 바이오-장치가 있어서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도록 되어있습니다.
사람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그러나 우리는 자라도록 창조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좀 키가 큽니다. 아니 아주 큽니다. 어떤 사람은 좀 작습니다. 아니 아주 작습니다. 어떤 사람이예수님의 키를 개산해았는데, 170cm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알아차리시는지 모르겠지만, 제가 정확하게 170입니다. 이정도면 만점 아닙니까!
그런데 불행하게도 우리 하나님은 육적인 키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몸매, 여러분의 화장과, 여러분의 복장은 하나님에게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영의 well-being 대하여 관심이 많으십니다. 누가 그러는데,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키를 무릅 위에서부터 잰다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하나님의 눈에는, 무릅 꿇고 기도 많이 하는 사람이 키가 제일로 큰 사람이구요, 허리를 굽혀 남을 섬기는 사람이 제일 키가 큰 사람이죠. 다시말해 겸손한 사람이 제일로 키가 크고 위대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 안에서 자라야 합니다 (베드로후서 3:18). 그런데 성장은 자동이 아닙니다. 애기를 낳아 놓으면, 자동으로 큽니까? 그렇치 않습니다. 기저기 값이 얼마나 듭니까? 천문학적이 숫자입니다. 아마 적어요 BMW 하나는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성장하시면서, 얼마나 많이 드셨는지 아십니까? 3끼를 꼬박, 빼먹지 않고 먹지 않았습니까!
여기 41절, 42절을 보니깐, 마리아와 요셉은 해마다 유월절이 오며는 예루살렘에 갔다고 적혀있습니다. 예수님의 집, 나사렛에서 예루살렘까지는 70마일 정도인데, 걸어서 한 5일 정도 걸리는 거리입니다. 그리고 유월절을 1주일 행사입니다. 그들은 유월절을 맞기 위하여 17일 정도를 낭비하는 것입니다. 또한 그들은 성전에 올라가기 위해 드는 비용을 저축해야했을 것입니다. 아마 시간이 많이 걸렸을 것입니다. 성경주석학자들은 사실 유대인들은 자기 인생의 3분의 1을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에 가기 위해 낭비한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매일성전을 그리워합니다. 어디에 살던지 매일 예루살렘을 바라보며 성전을 그리워했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하루에 적어도 세번을 예루살렘을 바라보며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 낭비하는 것은 낭비가 아닙니다. 한 번 우리의 모든 인생을 하나님에게 낭비해 보십시다. 왜 못합니까? 우리 주님은 우리를 위하여 죽어주셨는데… 우리는 우리가좋아하는데에 돈을 쓰고 시간을 씁니다. 여러분 생각나십니까? 몇 달 전에 개스 값이 한 갤론에 $4이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액수입니까? 어디에 사는가에 달려있지만, 어떤 분은 교회오는 자체가 부담이 들 수 있습니다. 제가 다시금 제 스태익고기 자랑을 좀 해야겠습니다. 제가 말씀드렸죠, 아무도 제 스태익고기를 거절 한 사람이 없다고… 왜냐하면, 저의 steak가아주 맛있기 때문이죠. 집이 멀어도 Steak를 먹으러 오더라구요. 개스 값이 비싼되도 오더라구요… 거리가 멀어도 오구요... 왜? 제 steak이 맛있어서죠…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면, 맛볼 수록 다른 것은 싫어집니다. 죄가 맛있어 보이지만… 하나님의 성령의 충만을 경험하면 경험할 수록 죄는 싫어집니다. 하나님을 요만큼 경험하면 부족합니다. 많이 마셔야 합니다. 많이 마시면 마실 수록 좋습니다. 하나님의 강에는 무한한 은혜의 생수가 흐르고 있습니다. 가슴이 미어집니다. 차고 넘칩니다. 가슴이 터질 것 같습니다.
히브리어 말에 하나님을 표현하는 말이 있는데... 바로 그것은 ‘엘 사다이’라는 말입니다. 그 뜻은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말입니다. 그 뜻은 못 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다른 해석은“하나님은 충분하신 분”이라는 뜻이라는 것입니다. 부족함이 없다… 이뜻은 우리가 말하기를 무엇만 있으면 더 좋고 행복할거라고 생각하는 이상, 하나님이 우리를 만족케 해주실수 없다는 것입니다. 제가 다른 것으로 충만할려고 노력하는 이상, 하나님께서 주시는 사랑으로 만족할 수없다는 것입니다. 제 아내가 저에게 사랑을 막 부어줍니다. 매일… 사실입니다. 제가 해야하는 일은 제 아내가 주고 싶은 모든 것을 받을 자세로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포지션에서 나와, 밖에 있다면, 제 아내가 아무리 나에게 좋은 것은 많이 줄려고 노력해도 받을 수 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과제는 충분하신 하나님으로부터 축복받을 위치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하나님의 “favor”—하나님의 은총—이 무엇인지 꼭 아시기 바랍니다. 여기서 은총이란 말은 “몸을 숙이다, 아래로 내려오다, 친절을 베풀기 위해 밑으로 내려 주저 앉는다”는 말입니다. 그뜻은 하나님은 우리를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고, 하나님은 하나님의 우리를 향하신 계획 속에서 우라기 성공키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은혜라는 것은 특별한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애정을 말하는데, 이 애정은 우리에게 영향력을 부여하여,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나를 좋아하게 하고, 나를 돕도록 해줍니다. 은혜의 하루는천 날의 노동보다 훨신 낫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수십년 노력해야되는 것을 하루에 이루어 주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해야할 것은 나오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자식은 부모에게 기쁨입니다. 아이들을 보면, 얼굴이 빛나는 것을 봅니다. 여러분, 제가 알죠… 아기들하고 어떻게 노는지… 구찌,구찌, 구… 아니 “구찌, 구찌, 구”가 뭡니까? 하나님이 그러시죠… 하나님은 여러분만 보면, 행복하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오시면,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임재에 거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에 거해야 하나님의 은총 안에서 성장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하나님의 성전에서 놀라운 사실을 깨닫습니다. 여기 49절에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예수님은여기서 하나님의 자기 아버지인 것을 깨닫습니다.
옛날에는 ‘구구 가가’했는데… 이제 커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데 성령이 깨닫게 해주시니까 거기서 처음으로 자기가 하나님이 자기의 아버지인것을 깨닫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하나님이 여러분의 아버지이신 것을 아십니까? 인류의 최고의 발견은 바로 이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이 하나님의 집에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아십니까?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 집에 있어야 한다”는 깨달으셨습니다. 내가 꼭 해야한다…하지 않으면 안되는 신적 명령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또한 신적 요구는 또한 신적 바람/소원/원함/소망이죠. 다시말해, 하기 싫은 것을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하나님의 집에 머물렀던 것은 하나님 집에 있구 싶어서 있었던 것이죠…
우리는 마시는 차와 같습니다. 차를 마실려면, 마실 차와 따뜻한 물이 먼저 만나야 합니다. 말씀이 우리 안에 들어오면, 말씀과 우리 사이에 상호작용이 일어납니다. 말씀에 오래 거하면 거할 수록, 말씀이 우리 안으로 더 깊이 들어옵니다. 그러면, 우리는 더 강해집니다.
주님 안에, 말씀 안에 더 머물러 계십시오. 우리가 주님에게 달콤한 향기가 되도록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더 머물러 있도록 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맛이 없는 물과 같습니다.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영혼으로 침투해 들어오도록 하십시오.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하면 거할 수록, 우리는 더욱 강하여지면, 달콤해집니다. 우리는 자라야 합니다. 하나님을아는 지식에 아기가 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오면, 하나님의 마음을 소유하게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보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구원받지 못한 자들이 보입니다. 아파하는 영혼이 보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일군의 자격 하나는 바로 하나님이 보시는 것을 보는 능력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보시는 것을 하나님의 마음 없이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하나님이 보시는 것을 보는 능력, 곧 영적 시력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갈 때, 우리는 하나님나라의 일군으로 되어갑니다.
새해에는 예수님을 더욱 더 사모하십시다. 예수님은 우리의 충만입니다. 말씀이신 예수님으로 충만하며, 성령으로 차고 넘치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은혜 안에서, 더욱 더 성장하십시다. 아멘!




